지난 10일 세계태권도연맹 사무국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진석 사무총장은 다소 격앙된 분위기였다. “어이가 없다”며, 말문을 연 양 총장은 스포르트 인테른(sport intern)의 기사를 부정했다. 특히 “모함하는 행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인과 태권도의 명예를 걸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대목에서는 다소 감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스포르트 인테른 기사에서 언급된 낫 인드라파냐(Nat Indrapana) 부총재는 현재 IOC 위원이며, 태국 관광스포츠부(Minstry of tourism and Sports) 차관이다. 선출직 부총재로 오랫동안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다. 김운용 전 총재와 돈독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이 되는 ‘얼마의 돈을 왜 주었나’에 대해 이날 양 총장은 스포르트 인테른의 기사를 모두 부인하고, 오히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제시한 것은 음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인 11일 세계연맹 사무국에서 열린 총재단 회의(WTF Commission)에 낫 부총재는 불참했다.
△맨체스터에서 무슨일이 있었나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전 당시 낫 부총재는 항공사의 실수로 가방이 늦게 도착했다. 당시 가방이 늦게 도착한 사람은 낫 부총재만이 아니었다.
양 총장은 가방이 도착하지 않았던 낫 부총재에게 ‘잡비 정도의 액수’를 건냈다고 말했다. 직접 낫 부총재의 방에서 이 돈을 건냈고, 당시 방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이는 양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다른 사람”이다.
낫 부총재의 방에 있었을 것이 가장 유력한 사람은 현재 세계연맹의 재무(treasurer)인 프리차 토트라쿨(Pricha Thotrakul, 태국)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토트라쿨은 낫 부총재의 최측근으로 해외 활동에서 항상 동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 총장이 동행없이 그의 방을 방문했다면, 토트라쿨이 그 방에 있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낫 부총재와 마찬가지로 11일 총재단 회의에 재무 자격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던 토트라쿨도 불참했다.
건낸 상황에서 낫 부총재는 “필요없다”고 되돌려 줬다는 것이 양 총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스포르트 인테른은 낫 부총재가 “더러운 돈(dirty money)”라며, 이를 거절했다고 게재했다. 양 총장은 이에 대해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시 사무국은 달러가 아닌 파운드화를 준비해서 현지로 갔다. 스포르트 인테른이 게재한 ‘10,000 달러’는 당시 사무국이 가져간 파운드화로 환산할 경우 약 5,000파운드 정도다. 그러나 양 총장은 “그런 큰 돈을 줄 상황이 아니었다”며, 부인했다. 당시 건낸 금액은 이견이 있지만 200파운드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
| 낫 인드라파냐 부총재. |
△IOC 윤리위원회는 왜 소환했나
IOC가 최초로 양 총장에게 공문을 보내 출석을 요구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당시 양진석 총장은 아시아 대륙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 그러나 출발 직전 돌연 태국 측에서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양 총장은 “IOC에서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통보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양 총장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서 모르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스포르트 인테른이 게재한 내용이 IOC 윤리위원회에서 알고 싶어 하는 내용과 다를 수 있다.
특히 윤리위원회가 양 총장을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도 “조사(investigation)가 아니라 질의(inquiry)”라고 말해, 스포르트 인테른의 기사가 사실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IOC가 발송한 공문은 ‘대외비(confidential)’로 분류하고, IOC측이 내용은 극비로 붙여달라고 했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게 외부로 유출됐고, ‘양 총장이 IOC 위원인 낫 부총재에게 돈을 건냈으나, 받지 않았다’는 큰 줄거리는 맞지만, 핵심인 ‘10,000달러’는 부풀려 져 있다. 이 대목에서 김운용 전 총재의 개입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스포르트 인테른이 발행되는 독일과 관련해서 박수남 부총재의 개입설도 제기됐다.
△조정원 총재의 딜레마
기본적으로 양측의 주장 중 양 총장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일부에서 제기한 김운용 전 총재의 개입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
| 지난 2005년 올림픽 프로그램 투표 직후 귀국할 당시의 조정원 총재. |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 추론하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양총장과 낫 부총재간의 불협화음이다. 현재까지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목표는 양 총장의 거취 문제이다. 미미할 수 있는 이번 문제를 낫 부총재가 이렇게 키웠다는 것은 양 총장과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동안 조 총재를 대신해 각종 불만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해왔던 양 총장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각종 회의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혀 온 두 사람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자는 결심을 낫 부총재가 했을 가능성이 높다.
낫 부총재가 이번 사건을 통해 조 총재를 압박하는 카드는 다양하다. 먼저 장기적인 목표가 낫 부총재의 내년 출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지만, 출마여부를 현재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 총재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김 전 총재의 출마설 역시 실현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최악의 상황에 조 총재가 낫 부총재와 양 총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낫 부총재는 IOC 위원으로, 차관으로, 부총재로써의 위신이 손상될 경우 세계연맹과 관련된 모든 직을 버릴 수 있다. 이 말은 그동안 낫 부총재를 통해 얻은 IOC 내의 지지기반에 치명적일 수 있다.
내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IOC 총회는 태권도의 또 다른 4년을 확보하는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를 위해 세계선수권도 총회 시기와 맞추어 코펜하겐에서 열린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낫 부총재의 비협조적인 자세는 조 총재 뿐만 아니라, 태권도의 올림픽 프로그램 잔류에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이는 조 총재의 IOC 위원 출마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한 표가 아쉬운 조 총재의 상황에서 낫 부총재의 비협조적인 자세는 기존의 위협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그동안 이뤄졌던 어떤 ‘조정원 흔들기’보다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반대로 양 총장도 양보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양 총장 개인과 사무국의 명예를 손상시킨 이번 사건에 대해 양 총장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실제 이뤄질 것이 확실시된다. 1차적으로 스포르트 인테른이 그 대상이 될 것이고, 여기에서 승리할 것이 확실한 상황.
결국 양 총장도 이 기회에 낫 부총재와의 관계정립을 새로이 하는 차원에서 입씨름만으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 조 총재가 개입하기 껄끄럽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낀 조 총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2009년 올림픽 프로그램 투표를 위해서는 낫 부총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면, 문 총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이후 불과 1년만에 또 다시 사무총장을 바꾸는 것은 조 총재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혀, 3선 도전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할 수 있다. 더욱이 낫 부총재의 뜻대로 될 경우, 향후 낫 부총재가 조 총재를 넘어서 세계연맹을 사실상 장악할 수도 있다.
결국 낫 부총재의 손도 양 총장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사람의 손을 동시에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양 총장이 IOC 윤리위원회에 참석하고 귀국하면 보다 면밀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조정원 총재에게 이번 사건은 또 하나의 딜레마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