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지난 80년 전 일제로 부터의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역사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득 안고 있다.
“태권도겨루기5인 단체전 경기”는 2007년 4월 12일 세상에 나왔다.
준비한 기간까지 따지면 이제 20년이 된 것이다.
먼저 5인단체전경기방식을 만든 “한국실업태권도연맹”은 2004년부터 약 2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당시 실업연맹 탄생에 부정적이고 반대 의견이었던 대한태권도협회 막강파워 권력의 주요임원(회장 김정길, 전무이사 임춘길, 사무총장 양진방, 경기부장 김무천)들을 어렵게 설득, 2006년 창립(창단 18개 팀)하게 된다.
2006년 한국실업태권도연맹 18개 창단 팀
1. 고양시청 2.국군체육부대 3.김제시청 4.동래구청 5.삼성에스원 6.성남시청 7.수성구청 8.수원시청 9.영천시청 10.용인시청 11.인천시청 12.제주도청 13.진천군청 14.청주시청 15.춘천시청 16.포천시청 17.하동군청 18.한국가스공사
대한태권도협회 2006년 이사회, 2007년 1월 정기총회에서 산하 연맹체로 초등연맹, 중고연맹, 대학연맹, 여성연맹에 이어 5번째 연맹체로 실업연맹이 승인되었다.
이 땅에 실업태권도연맹이 설립되던 2000년대 초반의 태권도겨루기 경기문화는 획일화된 올림픽경기방식으로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이렇게 재미없고 인기 없는 태권도경기는 올림픽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국내외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2007년 역사적인 제1회 한국실업태권도연맹회장기대회를 앞두고 김태일회장은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실업연맹에서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태권도경기방식을 만들어 국내 및 세계태권도계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태권도경기 역사를 바꿔보자는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경기방식개발에 대한 대한태권도협회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던 우리연맹 부회장과 이사들 모두가 협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3인조, 5인조단체전 경기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한 자는 협회로부터 나름 자유로운 환경에 있었던 회장 김태일과 사무국장 김성칠 2명만이 남아 새로운 경기방식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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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실업연맹 창단임원 명부 |
당시 태권도계는 협력과 융합이 필요한 시대였다. 더불어 가치를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태권도경기문화를 만들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2007년 1월 태권도에 미친 2명이 강원도 홍천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삼봉휴양림”에 들어간다. 3박 4일 머물며 김태일은 그동안 고심했던 “3인단체전”경기와 “5인단체전” 경기방식을 제안하였고, 사무국장 김성칠이 그것을 받아 경기규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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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그 시절 김태일 회장 |
휴양림에서 내려온 김태일은 실업연맹 이사회를 소집하여 기존의 개인전과 새롭게 준비한 3인, 5인단체전 경기방식을 설명하지만 창단시기 중심임원 이었던 윤종욱, 김세혁, 박계희 등 은 “어렵게 승인해준 대한태권도협회의 반대의견과 생소한 경기방식”임을 들어 개인전만 하고 단체전은 하지말자는 주장으로 일관하여 당일 이사회는 부결로 종료되었다.
그 후 수시로 대한태권도협회를 방문하여 단체전 필요성을 주장한 김태일은 2주 후 다시 실업연맹이사회를 열어 임원들을 설득해 보지만 냉담한 반응으로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물론 실업태권도연맹이사회 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절치부심 김태일은 대태(대한태권도협회)임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김성칠은 수시로 경기부(경기부장 김무천)를 방문하여 경기규칙을 다듬고 새로운 경기방식 시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작업을 지속한다.
결국 2007년 3월 초 제1회 한국실업태권도연맹회장기대회는 정식경기인 겨루기 개인전과 시범경기 3인, 5인단체전 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대한태권도협회로부터 승인을 얻는다. 당시를 회상하면 대한태권도협회장기 대회가 열리고 있던 경북 상주시에 내려간 김무천부장을 찾아가 어렵게 최종승인을 받아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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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1회 한국실업태권도연맹회장기 대회요강 |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에서 열린 제1회 회장기대회는 개인전에 이어 원형경기장을 처음 도입하여 선보인 3인, 5인 단체전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찾은 중앙언론 KBS, MBC, 동아일보 등 많은 기자들의 관심 속에서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공방이 오가는 경기로 호평을 받았고, 차등점수제를 도입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선풍적인 호응을 얻는다.
제1회 연맹회장기 대회에서 힘을 얻은 김태일의 실업연맹 단체전경기는 같은 해 9월 필생의 대회인 “2007 남한산성배 한국실업태권도 최강전”을 성남에서 개최한다. 이 경기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의식행사를 겸하고, 원형무대를 경기장 중앙에 올려 TV 실시간 중계방송을 할 정도의 관심을 집중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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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007 남한산성배 실업최강전 표지 및 대회요강 |
당시 김태일은 태권도경기의 변화를 지향하며 끊임없이 상상하고 혁신하려 했다. 또한 태권도 고유의 가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꾸려는 지혜와 용기의 행동을 이어갔다.
이상 실업연맹과 3인, 5인 단체전 경기탄생 배경의 현장중심에 있었던 필자의 시각으로 기록을 요약 정리해 봤다.
1992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으로 위촉되어 태권도역사, 철학을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처음 큰 뜻을 품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중간중간 어려움이 꽤 많았다. 이제 직장을 퇴직한지 3년이 지난다. 더 늦기 전에 지나온 태권도 속 세상, 세상 속 태권도 이야기를 나만의 이야기 형식으로 그려보려 한다.
2025. 7. 3. 천마산에서 김성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