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전 총재가 주도했다는 의심 속에 일어난 또 한번의 ‘조정원 흔들기’가 태권도의 올림픽 프로그램 종목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모든 IOC 위원들이 ‘돈’ 때문에 위원직을 떠난 상황이라 상황은 보다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난 10일 세계태권도연맹 사무국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진석 사무총장은 다소 격앙된 분위기였다. “어이가 없다”며, 말문을 연 양 총장은 스포르트 인테른(sport intern)의 기사를 부정했다.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이 되는 ‘얼마의 돈을 왜 주었나’에 대해 이날 양 총장은 스포르트 인테른의 기사를 모두 부인하고, 오히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제시한 것은 음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양 총장은 사건의 원인을 조정원 총재의 IOC 위원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2월 열리는 조 총재의 1차 심사를 염두에 둔 행동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두 가지 원인
먼저, 가장 먼저 이번 사건을 통해 향후 가장 크게 변화되는 두 가지는 내년에 있을 총재 선거와 올림픽 프로그램 선정 투표다. 두 사안은 사실상 같이 취급될 수 있다. 어차피 태권도가 올림픽 프로그램 종목에서 탈락할 경우, 조 총재의 3선은 물건너 간다.
반면, 탈락이 확정적일 경우 선거를 통해 비한국계 총재를 선출해 세계연맹의 개혁 이미지를 IOC에 심어줄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쓸 수는 있다는 점에서 선거 시기가 변수가 된다.
낫 인드라파냐(Nat Indrapana) 부총재는 현재 IOC 위원이며, 태국 관광스포츠부(Minstry of tourism and Sports) 차관이다. 선출직 부총재로 오랫동안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다. 김운용 전 총재와 돈독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 선거에 출마가 가장 유력한 후보이면서 당선 가능성도 조 총재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낫 부총재의 내년 선거 출마는 어려울 전망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양 총장과 낫 부총재간의 불협화음이다. 결과론적으로는 조 총재를 흔드는 것이지만, 양 총장의 입지를 흔드는 것은 단기적으로 낫 부총재에게 많은 이익이 있다. 특히 양 총장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제압(?)할 경우, 낫 부총재는 세계연맹을 사실상 장악할 수도 있었다.
문 전 총장 시절에는 낫 부총재의 의지대로 사무국을 움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양 총장이 재임하면서 사무국에 대한 영향력이 사실상 상실된 것이 그동안 가장 큰 불만이었던 것이다. IOC 윤리위원회에 맨체스터 사건을 알리면서 낫 부총재가 얻고자 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낫 부총재가 얻고자 한 것은 ‘양 총장 길들이기’였다.
△방콕과 맨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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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석 사무총장. |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전 당시 낫 부총재는 항공사의 실수로 가방이 늦게 도착했다. 당시 가방이 늦게 도착한 사람은 낫 부총재만이 아니었다.
양 총장은 가방이 도착하지 않았던 낫 부총재에게 ‘잡비 정도의 액수’를 건냈다고 말했다. 직접 낫 부총재의 방에서 이 돈을 건냈고, 당시 방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이는 양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다른 사람”이다.
낫 부총재의 방에 있었을 것이 가장 유력한 사람은 현재 세계연맹의 재무(treasurer)인 프리차 토트라쿨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토트라쿨은 낫 부총재의 최측근으로 해외 활동에서 항상 동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 총장이 동행없이 그의 방을 방문했다면, 토트라쿨이 그 방에 있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낫 부총재와 마찬가지로 지난 11일 총재단 회의에 재무 자격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던 토트라쿨도 불참했다.
당시 사무국은 달러가 아닌 파운드화를 준비해서 현지로 갔다. 스포르트 인테른이 게재한 ‘10,000 달러’는 당시 사무국이 가져간 파운드화로 환산할 경우 약 5,000파운드 정도다. 그러나 양 총장은 “그런 큰 돈을 줄 상황이 아니었다”며, 부인했다. 당시 건낸 금액은 이견이 있지만 200파운드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방콕에서였다. 양 총장은 맨체스터로 출발하면서 방콕을 경유했다. 먼저 방콕에서 낫 부총재와 만난 후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당시 두 사람 에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양 총장이 낫 부총재를 불쾌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의 방문에서 두 사람 간의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것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이다.
연맹 운영에서 조 총재를 넘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낫 부총재의 행동에 대해 양 총장은 도가 지나치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을 것이고, 낫 부총재는 이런 양 총장의 행동에 대한 답례(?)로 IOC 윤리위원회에 맨체스터에서의 일을 보고했다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타당한 견해다.
상세한 내용은 IOC의 발표가 나와야 알 수 있지만, IOC에 보고된 내용은 세계연맹 입장에서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어떤 제재나 징계를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IOC 윤리위원회
IOC가 최초로 양 총장에게 공문을 보내 출석을 요구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당시 양진석 총장은 아시아 대륙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으로 윤리위원회에 출석 후 대회가 열리는 베트남 현지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발 직전 돌연 태국 측에서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양 총장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출석 이전에 윤리위원회로부터 통보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포르트 인테른이 게재한 내용이 IOC 윤리위원회에서 듣고 싶어 하는 내용과 상관없는 엉뚱한 내용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윤리위원회가 양 총장을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도 “조사(investigation)가 아니라 질의(inquiry)”라고 말해, 스포르트 인테른의 기사가 사실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IOC가 발송한 공문은 ‘대외비(confidential)’로 분류하고, IOC측이 내용은 극비로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게 외부로 유출됐고, ‘양 총장이 IOC 위원인 낫 부총재에게 돈을 건냈으나, 받지 않았다’는 큰 줄거리는 맞지만, 핵심인 ‘10,000달러’는 부풀려져 있다. 이 대목에서 김운용 전 총재의 개입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스포르트 인테른이 독일에서 발행되고, 김 전 총재의 아들이 현재 독일에 있다는 소문과 스포르트 인테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박수남 부총재도 자연스럽게 개입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난처한 부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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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 인드라파냐 부총재. |
당초 낫 부총재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을 조용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 자신이 태국 정부의 각료(차관)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잡음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IOC 윤리위원회에는 낫 부총재가 아닌 프리차 재무가 총대(?)를 멘 것이다.
그러나 스포르트 인테른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낫 부총재에게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됐다. 내년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접어야 할 상황이 됐다. 이것이 김 전 총재가 개입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내년 선거만을 고려했을 때, 낫 부총재가 아닌 다른 후보를 김 전 총재가 지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면 이번 사건은 낫 부총재에게는 치명타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낫 부총재와 김 전 총재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결과론적으로 낫 부총재와 김 전 총재와 원만한 관계에 있다면, 스포르트 인테른의 개입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개입했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낫 부총재와 김 전 총재와의 관계는 당초 언론발표와는 달리 그리 원만하지 못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김 전 총재와 같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을 받을 경우, IOC 내에서의 입지는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또한 한국 정부나 한국의 태권도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국 정부를 흔들 경우, 차관직을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된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낫 부총재가 김 전 총재와의 밀월관계에서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OC 위원으로써, 정부 각료로써, 부총재로써 이번 사건을 통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잃을 수 있는 가능성만 생겼다.
특히 이번 사건을 통해 얻고 싶었던 ‘양 총장 길들이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양 총장에게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우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박 부총재 역시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 김 전 총재와 조 총재 사이에 끼어 입지가 점차 좁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에서 쌓아온 입지마져 흔들릴 위기에 빠졌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 김 전 총재의 총재 선거 출마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을 경우 상황은 낫 부총재보다 어려워질 전망이다. 또한 같은 선출직 부총재로써 조 총재와의 갈등에서 자신을 암암리에 지지해 준 낫 부총재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 부총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으며, 나와 연결짓는 것은 억지”라며, 이번 사건에서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런 주장과는 별도로 김 전 총재와 함께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의심을 확실하게 털지 못할 경우 박 부총재의 입지도 위축될 전망이다.
△내년 선거 어떻게 되나?
낫 부총재의 내년 출마가 사실상 좌절된 상황에서 새로운 후보가 출마할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낫 부총재는 각종 국제대회를 돌며 자신의 얼굴을 알렸고, 이는 2009년 선거에 대비한 초석을 닦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실추된 이미지는 출마에 치명타를 입혔다.
결국 김 전 총재가 개입했다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이 내세울 후보로서 낫 부총재가 아닌 다른 후보를 내기 위해 이번 사건을 빌미로 주저앉힌 것이다.
현재 출마 가능 후보군은 낫 부총재를 제외하고, 부총재와 집행위원 중에서 4명 정도가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한국계. 반면 낫 부총재를 대신할 외국계 후보는 가능성은 있지만 당선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지난해부터 모 부총재의 출마에 대한 소문은 있었지만, 선거를 2년이나 남긴 상황에서의 소문은 오히려 죽이기에 가깝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출마의지가 있느냐의 여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오는 선거에서 조 총재가 3선을 이룰 경우,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은 모두 총재의 꿈을 접어야 한다. 반면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올림픽 프로그램 종목 선정 투표를 무사히 넘기면 조 총재는 안팎으로 세계연맹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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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올림픽 프로그램 투표 직후 귀국하는 조정원 총재를 맞이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나온 사람들. 내년에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지 이버 사건을 계기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만신창이 태권도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명백한 것은 이번 사건이 누구의 계획이든 간에 태권도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사실이다.
조 총재 역시 이번 사건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IOC 위원 출마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르트 인테른이 상황을 너무 부풀리는 바람에 오히려 조 총재를 IOC에 선전해준 결과가 됐다.
또한 내년 선거에서 자신을 위협하던 가장 강력한 후보인 낫 부총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저앉으면서, 3선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것은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이 사건으로 조 총재는 낫 부총재의 연맹 운영 개입 억제와 선거 불출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낚는 횡재(?)를 했다.
반면, 올림픽 프로그램 종목 선정 투표에는 치명적이다. 내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 맞춰 세계선수권을 열 예정이다. IOC 위원들에게 태권도를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로 세계선수권을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상황이 어렵기는 지난 2005년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낫 부총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골이 깊어질 낫 부총재와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는 조 총재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결국 전체적으로 이번 사건에 피해를 입는 것은 조 총재라기보다는 태권도 전체이고, 가시적으로는 2016년 올림픽에서 태권도 대신 가라데 경기가 열리는 악몽이 단지 악몽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