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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태권도 지도자인 김용호 관장 |
‘태권도의 날’을 맞아 해외태권도지도자로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의 감사패를 받은 김용호 관장을 만나보았다.
김 관장은 인천 동산고를 거쳐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ROTC 4기로(66년~73년) 육군각계각처에서 태권도 교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대한태권도협회 국제부(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이전에는 국제부가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에 근무했으며 동남아 순회 시범을 비롯해 이란 특수부대 태권도 교관 및 프랑스 특수부대 태권도 교관으로 활동했다. 78년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한인회장, 평화통일자문위원, WTF 기술위원장, 영국태권도협회장을 역임했으며 97년도에는 태권도, 합기도, 공수도 등 종합무술을 가르치는 세계무술아카데미를 창설해 무도로서의 정신수련 및 한국의 문화를 알려왔다.
4일 열린 ‘태권도의 날’에서는 김 관장이 30여년간 해외에서 태권도의 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감사패를 수여됐다.
김 관장은 “태권도의 세계화는 73년 세계태권도연맹이 창설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어 “당시 세계 각국에는 가라데의 보급이 활성화 돼있었으며 태권도를 ‘코리아 가라데’라 불렀다. 하지만 동양의 철학이 겸비된 무도수업이 아니였기에 장기 수련생들이 없었다. 프랑스 현지만 하더라도 가라데를 배우는 사람들은 전문직 종사자들과 재야인사들이 많았으며 태권도는 일반 시민을 위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00여개의 자국 무도가 존재한다. 우리는 하나의 태권도 통합단체인 세계태권도연맹이 창설돼서야 해외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외국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나갔던 사범들 또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힘들게 지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 힘들게 태권도를 알렸기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국내는 유소년 인구가 주를 이루지만 다른 국가들은 유소년, 청소년층, 장년층의 비율이 일정하다. 한국의 문화와 동양의 철학을 접목시켰기에 성인들도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껴 장기간 수련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그만큼 하나의 한국문화로서 태권도를 받아들이고 수련하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국제올림픽 스포츠이기에 무도 태권도의 정신은 좀 미약하다고 할 수 있으나 스포츠맨쉽과 태권도의 ‘예‘를 같은 의미로 부여해 선수들에게 지도한다면 이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태권도가 연맹 창설 이후 급성장 했기에 시기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오점을 남기기만을 바라고 있으며 태권도를 밀어내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재 국내에는 IOC를 움직일만한 인물이 태권도계에 없다. 지금은 국내에서 ’태권도의 위기다, 아니다’를 논할 때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태권도계가 하나로 화합해 올림픽 영구종목 유지에 힘을 보태야 하며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IOC 위원들은 국제 스포츠 외교능력이 뛰어난 인사로 하여금 접촉케해 태권도의 우수성과 세계적인 위상을 알려야 한다. 2016년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를 보기위해서라도 범 국민적차원의 화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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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과 해외 지도자들의 기념촬영 |
김 관장은 국기원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국기원을 건축한지 37년째다. 당시에는 웅장하고 매우 신식 건축물이였기에 세계대회를 치룰 수 있었지만 현재 국기원의 시설은 낡고 오래돼 태권도의 성지로서의 상징성 조차 위태해지고 있다. 국내,외 수련인들을 위해서라도 국기원의 증축이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임직원들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지 수련인들이 국기원을 다녀오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정성스레 접대하는 것인데 외국인들이 장시간의 피곤함도 잊은채 국기원을 보고 싶어 스스로 찾는데도 불구하고 국기원내 영어가 가능한 직원은 불과 3명도 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도 없으며 시원한 물 한잔도 건네지 않는 것은 국가적인 망신이다”고 말해국기원의 개혁과 변화를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을 보여줬다.